22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⑤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헬, 순전하면〕
마태복음 6:22
눈은 바깥 세상을 보는 창문이다.
어떤 창문이냐에 따라 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내면세계가 결정된다.
이 창은 바로 가치관이다.
이 가치관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세상나라 가치관과 하나님 나라 가치관이다.
사실 창세 이후 아담때부터 이 두 가치관의 싸움이 이어져 왔다.
지금 마태복음 6장을 읽어 가고 있는데‥
이야기의 주제가 단락 단락 끊긴 것 처럼 보인다.
특히 눈은 몸의 등불이라고 말씀하시는 이 구절은 중간에 삽입된 말씀 처럼 보인다.
탕감, 보물이야기 하가가
눈이야기를 하고 다시 재물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러므로 눈 이야기는 다름 아닌 재물을 바라보는 시각, 가치관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아무리 재물에 관한 이야기를 해도 근본적으로 가치관이 바뀌지 않으면 돼지가 다시 시궁창으로 가는 것과 같이 된다.
가치관은 내가 어떤 주인을 섬기는가와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진다.
그러므로 다음에 이어지는 말씀이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치적인 이야기이다.
마치 민주주의 나라에서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간첩이 있다면 가장 먼저 정치적으로 일치를 볼 수 없는 것과 같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은 세상나라에서 수용이 안되고 마찬가지로 세상나라 가치관은 하나님 나라에서 용납되지 않는다.
재물에 대한 생각은 먼저 내가 누구를 섬길 것인가를 결정하면 쉬워진다.
나는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겠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더 알기 원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더 누리기 원합니다.
세례요한도 그랬고, 예수님도 그랬다.
회개하라!
새로운 가치로 다스리는 새 나라가 도래했다.
새로운 나라의 가치관을 따르라는 것이다.
이렇게 바뀐 가치관을 따르면 열매가 맺힌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이다.
이 열매가 맺히지 않으면 기다리는 것은 도끼와 불이라고
하신다. 즉 그 땅에서 찍어 내어 불에 태움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