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는 통치와 심판의 기초 위에 선다. 그런데 이 심판에서 왕은 형벌보다 용서 쪽을 원하심을 본다. 왕이 먼저 일만 달란트 빚진 자를 용서하신다. 용서받은 자는 자기 동료 100데나리온 빚진 자를 용서하지 못한다. 이 사실을 확인한 왕이 용서한 것을 취소하겠다고 하셨다. 결론을 보자.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네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같이(비유) 하시리라. (마18:35)
이것은 주기도문과 정확히 일치한다. ‘우리가 빚진자를 용서한 것같이 우리를 용서해주세요!’라고 기도하라신다.
더 강조하여 재물과 용서를 연결하신다. 재물의 주인과 그것을 맡은 청지기로 비유로 말씀하신다. 청지기 사무를 그만하는 것은 곧 죽음이다. 죽음을 선고 받고야 재물이 자기 것이 아닌줄 알고 그제야 주인의 뜻에 맞게 용서를 시작한다. 이것을 주인이 칭찬한다. 용서를 못하는 것은 재물을 섬기는 것(재물의 주인 뜻과 불 일치하므로 재물이 주인 노릇하는 것)이고 용서하는 것은 주인 뜻에 충성하는 자로서 주님을 섬기는 것이라는 결론을 주신다.(눅16:13)
용서못함은 재물섬기는것과 같다. 주님의 깊은의도를 알지 못하면 결국 주님과는 상관없는 삶을 살게 되네요.
참고로 돈 가치의 차이를 비교 공유합니다.
만달란트는 16만년 장정이 일한 품삯이고,
백데나리온은 동일하게 장정의 100일 품삯입니다.
참고하세요.
성경 중에는 돈으로 빚진 것과 손해를 끼쳐 빚진 것의 구분을 하지 않는 듯하다. 내가 받은 피해를 내가 감당하고 상대를 자유롭게 해 주는 면에서 구분이 필요없는 듯하다. 그러므로 탕감과 용서는 동일하다고 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