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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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생명이 있으면 살았다. 생명이 없으면 죽었다. 이야기 합니다.
생명이 있는지 없는지는 호흡을 하는지 안하는지로 구분을 합니다.
호흡하면 생각이 나는 것이
하나님이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시니…
라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호흡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기운을 받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단순히 산소를 공급한다는 말 이상이겠지요.
(오늘 날에는 산소를 강제로 공급하여 연명하는 기술이 있습니다만…
단지 산소공급만 한다고 살아있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기술적 측면만 보는 것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운을 받는다. 하나님과 소통한다.
그런데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빛은 여러가지 일을 합니다.
그 중에서 한 가지는 안내를 하는 것이지요.
안내를 한다는 것은 방향을 제시한다는 것인데…
우리의 삶을 보면 가치관이 삶의 방향을 결정하지요.
참 빛. ‘참’을 강조했다면 참된 가치관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참된 가치관은 참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만날 때에 알 수 있습니다.
(요한 복음 말씀 전체가 계속 같은 맥락 속에 관통하는 것을 느낍니다.)
결국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참된 가치관 속에 살아야한다는 말이기도 하네요.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참된 가치관을 따라 살다보면 세상에 빛으로 나타나게 되어있고
그 가치관을 따라 사는 동네는 숨겨지지 못하고 드러나게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가치관은 관념적인 말 같지만 그것은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나쁜 가치관을 가진 사람은 나쁜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고
그것이 그렇게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회에서 어떤 평판을 받는가? 하는 것을 쉽게 무시할 수 없는 것이지요.
물론 그 평판이 올바른 평판인가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반적인 이야기 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오늘날 기독교가 사람들에게 밟힘을 당하고 있는 것은 소금의 맛을 잃었기 때문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자성하고 예수님께 나아가 고침을 받아야 합니다.
이 일은 개인적으로 또 공동체적으로 일어나야 하는 것이지요.
특히 공동체가 커지면 그 만큼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 많을 수 밖에 없는데…
그럴수록 더욱 깨어 조심해야 하는 것임을 느낍니다.
내가 속한 공동체가 세상에 맛을 내고 세상에 빛으로 드러나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세상에 드러나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나의 삶이 그렇게 되기를 소망합니다.